상중.

 언젠가 어린 마음에 나는 꽤나 차가운 녀석이 아닐까, 누가 죽는다는 생각 - 심지어 부모님이나 친구가 죽는다는 공상을 진지하게 해 봐도 그닥 눈물이 나오려 하지 않는데 혹시 실제로 그런 일이 닥쳐도 그렇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다.

 지난 주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내가 장손이다보니 할아버지께서는 날 특히 귀여워 하셨다. 워낙 그런 표현을 안하시는 분이지만 어린 시절 그분의 집에서 큰 아이는 나와 내 동생 밖에 없으니 그것만으로도 내 사촌들과는 위치가 틀렸다. 기억나는건 언젠가 갓 기원에서 바둑의 기본 규칙쯤은 익숙히 하고 10몇급인가를 딴 애송이가, 나름 우리집에서 바둑 두는 사람은 나밖에 없지 않겠냐고 생각하며 할아버지와 한판을 두었다가 박살나고 눈물을 글썽이던 기억. 당시 순진했던 나는 뭔가에서 지면 분해서 눈물을 글썽였고 할아버지는 그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곤 했다. (...)
 야심찬 사람을 좋아한 분이었으니까. 아무것도 없이, 일제시대 만주에서 돌아와 건물을 몇개나 올린 분이니까. 
 내가 어릴때도 우리 가게 이름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가게들이 무슨무슨 상회니, 뭐뭐 슈퍼니 하는 두세글자 이름이나 영어 이름을 달고 있을때 우리 가게만 복순창상장이라는 길고 이상한 이름을 달고 있었으니. 조금 머리가 굵고는 내가 화교인가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할아버지가 만주에서 가난하게 사실 무렵, 그분이 살던 2층 셋방의 창문을 열면 어떤 중국인이 경영하는 커다란 가게가 있었고 그걸 볼때마다 할아버지는 자신도 언젠가 저런 큰 가게를 가지고, 이름을 저걸로 하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가신건 새벽이었다. 몇일째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질 못하신지라 가족들 전부가 서울에서 부산에서 모여있었다. 아마 오늘을 넘기지 못하리란 생각에 몇명이나 남아 밤을 세었다. 틈틈히 교대로 자면서 자리를 지키던 3시쯤. 머리맡의 기계가 벌써 몇번인가의 비명을 토했다. 힐끗 보았더니 다시 보이는 녹색에서 붉은 색으로 바뀐 숫자. 하지만 전과는 틀리 떨어진 것은 혈중산소농도가 아닌 심박이었다. 바로 조금전까지 90을 넘던 수가 순식간에 50으로 뚝 떨어져 있었다.  
 왔구나. 모두가 아무 말 없이 벌떡 일어나 침대에 둘러 섰고. 심박수는 조용히 40, 30 으로 떨어졌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정확히 가시는 시간을 알려고. 3시 18분이 되었고, 그때 아버지가 나를 툭쳤다. 고개를 들어보니 기계는 플랫 라인을 그리고 있었다.

 가서 알려라. 라는 젖은 목소리에 나는 병실을 나섰다. 갑자기 몇일간 지냈던 병실 호수가 기억 나지 않아 돌아와 다시 한번 본다. 야근중인 간호사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2301호 임종하셨. 제대로 말을 끝낼수 없이 목에서 오열이 나왔다. 

 마지막 몇일간 많은 고생 하셨지만. 그래도 행복하게 가신 편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에 부산에 뿔뿔이 흩어져 사는 3남 1녀의 자손과 아내, 장손이 모두 모여 머리맡을 지키는 가운데 가셨고. 그다지 많이 알리지 않았음에도 수백명의 사람들이 조문을 왔고 90이 넘는 화환이 식장을 가득 메웠다. 

 자는 듯하다. 라고 흔히 글에서 읽었지만. 마지막으로 염을 할때 본 모습은 정말로 주무시는 듯했다.

 나는 무신론자에 가깝다. 사후세계도 회의적이다. 천국과 지옥의 개념은 이해하기 어렵다. 다만 사후세계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야 한다. 나도 죽음은 무서우니까. 하지만 일단 죽는 순간 모든 것은 끝난다, 라고 생각하며 그 공포에 익숙해지려 종종 일부러 떠올려보곤 한다. 
 하지만-. 같이 일제시대와 만주 벌판과 6-25 전쟁과 군부 독재 시절. 그 많은 세월을 모두 헤쳐온 할머니가 좋은데 가시라고 속삭이는 모습을 보면서. 하늘의 모든 별에. 세상의 모든 신에. 자비가 있으며 그것이 별빛처럼 많기를. 세상 모두와 이곳에 닿기를 비는 마음을 안다.

 그러니 그곳이 좋은 곳이기를. 이 날의 마음과 이 기분을 잊지 않기 위해 이 포스팅을 남기자.

by loony | 2009/05/15 09:12 | 나무의 노래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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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이롸 at 2009/05/15 09:15
좋은 곳 가셨을거에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Commented by Moonseer at 2009/05/15 09:48

명복을 빕니다.

고생했어, 일상 생활로 돌아가려면 쉽지 않을 텐데 힘 내라.
Commented by 디안 at 2009/05/15 10:07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Commented by Wishsong at 2009/05/15 10:42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편안히 쉬시길...
Commented by 마스터 at 2009/05/15 11:44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Commented by 카시니츠 at 2009/05/15 17:12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Commented by 나좀봐라 at 2009/05/15 22:33
편히 쉬시길 빕니다.
그리고 못가서 죄송했어요.
Commented by 文乞 at 2009/05/16 01:14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Commented by lchocobo at 2009/05/29 21:05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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