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바라라는 것.

 왠일인지 나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고도 간절한 일이랴.
날렵한 끌이나 기능 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손끝에 모으고,
생명을 기울여 한마디 한마디, 파나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세월이 가고 시대가 바뀌어도 풍화 마모되지 않는
모국어 몇 모금을 그자리에 고이게 할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그것이 어느 날엔가 새암을 이룰 수만 있다면,
새암은 흘러서 냇물이 되고,
냇물은 강물을 이루며,
강물은 또 넘쳐서 바다에 이르기도 하련만.
그 물길이 드는 굽이마다 고을마다 깊이 쓸어안고 함께 울어 흐르는 목숨의 혼불들이,
그 바다에서는 드디어 위로와 해원의 눈물나는 꽃빛으로 피어나기도 하련마는.


최명희님.   혼불, 두번째 출간본 작가 후기에서.




나는 그분처럼 모국어에 혼을 새기는 재주도, 거기에 꿈을 걸지도 못하고 그 곁자리를 무책임한 마음으로 어슬렁거리는 녀석이지만. 그래도 저 새암에 고이는 물같은 것을 한주먹 떠 근처 목마른 사람들에게 조금씩 뿌려줄 수 있다면. 그것도 산보 치고는 꽤나 훌륭한 녀석이 아닐까, 하고 최명희 문학관의 지하. 저 말을 적어놓은 팻날 앞에서 잠시 생각했었다.


by loony | 2008/11/19 17:32 | 나무의 노래 | 트랙백 | 덧글(4)

트랙백 주소 : http://loony.egloos.com/tb/3985705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카시니츠 at 2008/11/19 21:30
.....전 항상 'Howling Dream' After를 꿈꾸고 있어요.......[잊을수없는만우절농담으득]
Commented by loony at 2008/11/19 22:57
........어 꿈은 꿈으로 남을때 제일 예쁘장하다고 어디서 많이 들었던 기억이... ( =_=);;;
Commented by 이롸 at 2008/11/20 10:55
왠일인지 나는 원고를 그릴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그림을 새기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바꾸니까 왤케 십덕같죠...ㅡㅡ;
Commented by loony at 2008/11/20 18:26
......원고란 단어에서 이롸님 머릿속에는 겨드랑이가 가득 그려진 하얀 종이가 떠오르기 때문이겠지요 짐승아...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