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05일
악몽
꿈에서 나는 학교에 다니는 별 볼일 없는 아이였고, 그 사실에 괴로워 하고 있었다.
구원은 좀 묘한 방향으로 찾아왔는데. 학교 옥상의 어느 한 곳에 가면, 나는 다른 세계 - 아마도 꿈 속의 꿈 - 로 겹쳐져서. 그 곳의 나는 순간 이동이 가능한 영웅이었다.
그 꿈의 꿈의 나일때는 재밌는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었다. 최고의 길몽중 하나라는 하늘을 나는 것도 가능했다. 이동 할때야 팍팍팍 날아가면 되고 허공에 멈출때는 엄청나게 짧은 시간에 허공의 동일 좌표로 순간이동을 반복해 허공에 떠 있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는 꿈 답지 않은 꼬장꼬장한 설정까지 스스로 만들어내 납득하고 있었다.
여하간. 꿈속의 나는 모 양키 만화의 초딩 유격대와 같이 놀면서 뭔가의 사건을 수사하느니. 사건을 조사한다면서 리스트의 위치로 순간이동을 한다느니. 닥쳐온 위험에 날아서 도망간다느니.
...하는 일을 하는 사이. 어느새 옥상으로 날 찾으로 올라온 친구에 의해, 꿈 속의 꿈에서 끌려 나오곤 한다.
그 친구는 어째 척 봐도 카드캡터 사쿠라의 토모요란 컨셉으로. 이런 붕 떠 있는 나를 친절히 감싸주는, 내 비밀의 이해자였다. 또 날아갔니, 라면서 내게 이야기를 졸랐고. 그때마다 나는 이번에야 말로 비웃음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두서없이 이야기를 늘어 놓았다.
꿈속의 나는 불안해 했다. 이것이 도피하는 망상이 아닐까. 판별하는 법은 간단했다. 이게 도망일 뿐이라면, 그 세계는 결국 내가 바라는대로 움직일 것이다. 나는 승리하고, 악은 패배하고. 나는 현실로 언제나 돌아온다.
그렇다면 내가 패배하는 것이 그 세계가 진짜라는 증거인가? 하지만 패배하고 나서야 "아, 다행이야. 진짜구나." 라고 해 보았자. 이미 그 세계는 부서져 다시는 갈 수 없게 되는데?
그렇기에 어느 것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내게, 어느날 꿈의 꿈 속에서 나는 패배한다. 도피라면 절대로 겪고 싶지 않을 큰 슬픔을 준. 무척 쓰라리고, 너무 큰 것을 잃었지만. 반격의 실마리만은 놓치지 않은----
최고의 패배였다.
그렇기에 나는 영웅다운 눈물을 지으며, 마지막 반격을 위해 다시금 옥상의 그 자리로 돌아가겠노라고 친구에게 말했다. 친구는 성모처럼 미소지어 주며.
"너 정말 비극에 젖는거 좋아하는 구나."
# by | 2008/11/05 20:53 | 나무의 노래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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